- 정지우의 『나를 살린 청춘 고전』을 읽고
AI 시대, 왜 다시 고전인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두고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라 말했다. 오늘날처럼 챗GPT가 몇 초 만에 책 요약본을 뱉어내고, 효율성과 빠른 정보 소비가 미덕인 'AI 만능 시대'에 고전을 묵독(黙讀)하는 행위는 어쩌면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이자 변호사인 저자 정지우는 오히려 이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야말로 흔들리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뎌온 이야기들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나를 살린 청춘 고전』은 단순한 고전 해설서가 아니다. 소속도, 명함도 없이 불안했던 서른 무렵의 저자가 고전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써 내려간 치열한 '삶의 고백록'이자 '구원록'이다.
내밀한 삶의 주석으로 읽는 위대한 문장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솔직함'에 있다. 저자는 소속 없는 청춘의 끝자락에서 느꼈던 막막함과 불안을 숨김없이 꺼내어 고전 속 인물들의 내면과 나란히 배치한다.
책은 총 3부와 마흔에 다시 읽은 특별 외전『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청춘을 다시 살기)에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을 통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운명을 마주하는 용기를 이야기한다. 특히 소로우가 도시를 떠나 호숫가로 향한 것이 휴식이 아니라 '삶의 가장 핵심에 뛰어들기 위함'이었다는 해석은, 늘 중요한 순간을 미래로 미루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2부(바람직한 욕망의 길 설계하기)와 3부(삶의 운명과 타인을 받아들이기)를 거치며 밀란 쿤데라,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도스토옙스키 등의 사유를 저자의 구체적인 삶의 장면 위에 겹쳐낸다. "지하 생활자의 모습은 병에 가깝다"라며 때로는 계산을 멈추고 판단을 정지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성찰은 사회생활 속에서 영악해지기를 강요받는 우리 모두의 찔린 구석을 건드린다.
특히 이번에 추가된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특별 외전)은 이 책의 백미다. 죽음 직전에야 자신의 삶이 거짓이었음을 깨닫는 이반 일리치를 통해, 저자는 마흔의 길목에서 다시 한번 묻는다. "지금 이 순간의 내 삶은 진실한가?" 이 질문은 청춘뿐만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모든 세대에게 해당하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이 질문을 마주하는 순간, 나의 청춘을 채얼던 고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월든』, 『데미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위대한 개츠비』가 겹친다.
30년전 읽기는 읽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아주 일부분만 생각난다.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한 문구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데미안을 떠올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이 주인공인 싱클레어에게 엄마(에바부인)의 키스를 대신 전달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이런것만 기억에 남게 되는 것 같다.
나만의 서사를 시작할 용기
우리는 흔히 책을 '읽는다'고 표현하지만, 진정한 독서는 행간에 숨은 의미를 길어 올려 내 삶에 투영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단 한 권을 읽더라도 그 문장이 마음에 남긴 발자국을 '나만의 언어'로 바꾸는 법을 몸소 보여준다.
나는 고전을 읽으면서 이렇게 다양한 고민과 사색을 했었던가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젊은시절부터 글쓰기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랐던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살린 청춘 고전』은 고전을 읽으라고 강요하거나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그저 고전이 어떻게 한 사람의 벼랑 끝 삶을 지탱하고 살려냈는지를 담담하게 증언할 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옛사람들의 문장이 오늘을 버텨내는 우리에게 따스한 위안으로 변모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고전이 보증하는 삶의 지지 속에서, 불안을 기꺼이 껴안고 '나만의 서사'를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젊을때 읽어던 고전을 나중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 든다고 하던데 삶을 통과하면서 쌓인 경험치의 차이에 의한것이 아닐까. 오늘 다시 고전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