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었으나 결코 낡지 않은, 오늘날 우리 교실을 향한 질문
1991년의 외침이 2026년의 교실에 당도하다
나는 '93년도에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이듬해 '94학번으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지금 저자가 말하고 있는 교육현장에서 자라고 공부했던 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교육현장만은 크게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저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간 30~40년이 넘는 간극이 있음에도 그렇게 시간적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책의 주장과 외침들은 대부분 지금도 이루어내거나 풀어내야 하는 내용들이다.
이것이 현재의 교육을 고발하는 역설이 아니겠는가?
1985~1991사이에 집필된 내용이 현재의 교육현장에도 정확히 맞아 들어가는 내용이니까.
그간 다만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경쟁이 조금 완화되었을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친구가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까닭에 몇 번 사무실을 찾아가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두께의 '00년도 입시요강 책자가 켜켜이 쌓여 있었는데, 요즘은 입시가 정말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줄 세우기 입시가 만연하고 있다. 입시는 사교육의 힘으로 아이들을 밀어 올려 주지 않으면 안되는, 한 집안의 재력, 정보력 총력전이 되었다. 바뀌었다고 할 만한 부분은 이렇게 저렇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으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대학의 입시요강이 매우 고도화 되어간다는 점이다.
나도 아이가 이제 고2라서 최신 입시요강 쯤은 줄줄 꿰고 있어야 하는 내용인데 좀처럼 현실처럼 와닿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마주한 교육 현장은 항상 위기 속에 있었다. 직접적인 체벌이 사라지고 교실의 풍경은 몰라보게 현대화되었지만, 학령인구 감소, 무한 경쟁, 학교폭력, 학생과 교사 간의 소외 등 본질적인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지금의 드라마도 교육문제와 학폭 등의 내용들이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 출간된 김종만의 교육 비평집 『교육의 이유』는 40년 된 타임캡슐을 열었는데 오늘자 신문이 들어있는 듯한 기묘한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 책은 1991년에 출간되었던 『아이들을 매질하는 어른들의 나라』 중 오늘날에도 의미있는 글들을 선별해 펴낸 복간본이다. 수십 년 전 초등학교 교사로서 저자가 치열하게 고발했던 입시 위주 교육, 점수 경쟁, 그리고 관료주의적 교육 행정의 폐해는 2026년 현재의 학교 모습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다.
'점수'라는 틀에 갇힌 아이들과 잃어버린 '신명'
시험만 없다면, 학교 성적의 우열이란 가림만 없다면 모두 행복하고 떳떳하게 지낼 아이들이 학교란 울타리에 갇혀서 숨조차 크게 못 쉬고 엎드려 있다.
노는 것이 불법시되고, 권리라곤 종종걸음으로 달릴 수 있는 것 밖에 없고, 모든 규칙과 책임과 의무로 겹겹이 묶여 있는 아이들이 애처롭고 측은하다.
학교제도라는 거대한 원시적 기계는 망그러진 채 삐거덕거리며 오늘도 하는 일 없이 돌아가고 있다. 기계속에 갇힌 아이들도, 그 기계를 조작하는 어른들도, 그 기계의 조수인 교사들도 누구 하나 손댈 엄두도 못 내고 그저 망연히 바라다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흐르고 흐르는 것이다. 좀 더 세심하고 인간스러운 학교.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접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학교를 운영한다면 오늘날처럼 수많은 낙오자로 낙인이 찍힌 아이들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저자 흙내 김종만 선생은 교육을 지식 주입이나 출세를 위한 도구로 보지 않았다. 그는 1부에서 "교육은 서로 미워하는 훈련인가"라며, 1등과 백 점만을 강요하고 낙오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는 어른들의 교육관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본성을 짓밟는 ‘살인 진행 중인 자들’일지도 모른다. 체벌의 몽둥이는 사라졌을지언정, 눈에 보이지 않는 등수와 성적이라는 정교한 압박이 아이들을 여전히 짓눌러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저자가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실천했던 '놀이'와 '글쓰기'의 가치가 돋보인다. 저자는 방학숙제 대신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몰두하며 행복해할 수 있는 '노는 숙제'를 주자고 제안한다. 근대 산업사회 이후 '노는 것 = 죄악'으로 여기는 풍토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전통놀이를 즐기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글로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해방이라는 것이다. 기교를 가르치는 글짓기 선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심리를 이해하고 삶을 가꾸는 글쓰기 지도를 강조한 대목은 오늘날 기능적 언어 교육에만 치중하는 현실에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에게 교육 말고 우선 해야 할 일이 없다"
이 책이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강력한 '현재성'을 갖는 이유는 저자의 시선이 거대 담론이나 딱딱한 교육 이론에 머물지 않고, 항상 '아이들의 구김살 없는 삶'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교육 말고 우선 해야 할 일이 없다"라는 저자 서문의 고백은, 교육의 붕괴를 말하는 지금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하는지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교육의 이유』는 단순히 제도의 변화만을 촉구하는 책이 아니다. 교사로서, 학부모로서, 혹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진정 아이들을 영혼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 대하고 있는지 되묻는 거울이다. 반복되는 현실을 넘어 교육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오래되었으나 결코 낡지 않은, 오히려 가장 뜨거운 질문을 건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