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라는 낯선 행성은 나도 적응이 잘 안되는데 마음에 든다는 외계인 니나, 김하율의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책표지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책내용

지구라는 낯선 행성에서 배운 '인간다움'의 온기

- 김하율의 『이 별이 마음에 들어』를 읽고

외계인의 눈으로 본 우리의 세계

우리는 익숙한 것의 가치를 자주 잊고 살아간다. 매일 마주하는 타인의 감정,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계의 굴레 속에서 때로는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제11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김하율 작가의 『이 별이 마음에 들어』는 이처럼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던 '지구인의 삶'을 외계인의 눈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니나가 1970년대 한국의 여공이라는 가장 낮고 치열한 삶의 한복판에 스며들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SF적 상상력과 한국 현대사의 정서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휴머니즘을 선사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외계인이 안됐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인데, 불시착을 해도 어떻게 이런 곳에 떨어 졌을까?
운이 정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는 좋은 곳이 많았을 텐데 심지어 한국에도 좋은 곳은 있었을 텐데 어쩌면 1970년대 노동 현장의 한복판으로 떨어졌을까?



폭력과 효율 사이, 마음을 학습하는 과정

소설의 주인공 니나는 본래 감정이 없고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외계 존재다. 그녀에게 처음에 비친 지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력적이고, 그 폭력으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종들이 사는 곳'에 불과했다. 생존을 위해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며, 니나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지구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계산적이었던 니나의 마음에 균열을 내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들의 '감정'과 '연대'다.

  • 1970년대의 공장이라는 팍팍한 공간 속에서도 서로를 챙기는 오야, 혜란, 미자, 그리고 굴보와 석이 보여주는 연모와 다정함은 니나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있는 가산디지털단지가 예전에는 방직공장, 옷공장이 많았었던 가리봉 지역이라 소설에서의 미싱이 돌고 있는 공장의 느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효율적으로 잠을 자는 게 낫다고 생각하던 외계인이 "내일도 나올 거죠?"라는 수줍은 질문에 흔들리고,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연모'임을 깨닫는 과정은 이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감정 학습의 순간이다. 정말 소설처럼 그 시절의 낭만이 있었을까?

모든 온기가 빠져나가는 고통의 순간에도 니나는 보고서에 한 줄을 덧붙인다. '지구인은 비효율적이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짧은 문장은 존재와 존재의 경계를 넘어 타자를 이해하려는 애정의 표현이자, 인간이 가진 선한 본성에 대한 작가의 깊은 신뢰를 보여준다.


"안녕, 나의 행성"이 남긴 여운


" 니나는 웃음이 나왔다. 고향 행성은 인간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비효율적이고 감정적이다. 그래서 저능하다. ''아들하고 갈 수 없다면 지는 지구에 남겠어라우."
​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나는 후련하게 말했다. 니나의 대답에 직원은 동요하지 않았다. 직원 또한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 지는 이 저능한 존재들을 사랑하니께요."
" 역시 이번에도 결과는 같군요. 의사를 존중하겠습니다. 남는 건 자유지만 기억을 지우겠습니다. 호리하이코키야, 당신은 이제 평범한 지구인으로 남은 생을 살게 될 겁니다."

" 잠깐만요. 기억은 지우지 마셔라우. 지 과거는 소중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으니께요."
니나는 두 손을 모았다. 니나를 잠시 쳐다보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 그럼, 해브 어 나이스 데이."


사실 걱정 했었다.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가 될지, 정말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한 편 씁쓸했다. 처음에 택배기사가 사실 굴보의 아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점, 또한 같이 일하게 된 신입이 사람이 아니었던 점, 정말 세상은 그렇게 무한한 비인간적인 세상으로 수렴하게 될까. 그 사이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가야 할지 작가가 제시해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로자와 사용자, 치매를 앓는 부모와 자식,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까지. 소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관계의 형태를 촘촘하게 가로지른다. 외계인 니나가 지구에서 보낸 수십 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대단히 독특한 구성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익숙하면서도 아픈 과거의 노동 현장을 외계인의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보게 만들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두려움 속에서도 결국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다.

"안녕, 나의 행성"이라는 니나의 마지막 인사는 단순한 작별이 아니다. 비록 상처받고 부서질지언정 서로 연결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지구라는 별을 향한 깊은 애정의 고백이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인간에 대한 혐오와 피로감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이 별이 왜 여전히 사랑할 만한 곳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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