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나'로 서는 용기: 『이만큼 했으면 괜찮은 부모 아닙니까』
부모라는 이름에 가려진 '나'의 연대기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도 거룩한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부모’일 것이다. 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부터 인간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책임감을 짊어지게 된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주고 싶고, 결점 없는 완벽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는 열망은 모든 부모의 본능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숭고한 책임감은 때로 부모 스스로를 옥죄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돌아온다. "내가 과연 잘 키우고 있는 걸까?", "나 때문에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끊임없는 불안과 죄책감 속에서 정작 부모 자신의 영혼은 서서히 마모되고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생각이 많이 났다. 마냥 귀여운 아이들이지만 잘못을 해도 놓아두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행여 버릇이 없어질 것 같아 그냥 지나치면 안될 것 같고, 또 혼내고 타이르면 위축될까 두려웠던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사랑하기 때문에 잘 키우고 싶었고, 잘 자라주기를 바라지만 내 뜻과 내 의지로 되는 일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에 많이 아파했다.
김미영 저자의 『이만큼 했으면 괜찮은 부모 아닙니까』는 부모라는 이름 아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버티고, 흔들리고, 남모르게 눈물 흘려온 이 땅의 모든 부모에게 건네는 따뜻하고 담담한 구원의 기록이다. 저자는 자신이 엄마로 살아낸 치열한 시간의 궤적을 복기하며, 그 어두운 터널 속에서 자신을 붙잡아 주었던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문장들을 길잡이 삼아 한 편의 아름다운 자기 회복기를 완성해 냈다. 이 책은 '훌륭한 부모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오만한 지침서가 아니다. 오히려 온 힘을 다해 비틀거리며 걸어온 부모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만큼 했으면 참 괜찮은 부모"라고 위로하는 다정한 동반자의 고백이다.
흔들림의 단계를 지나 공존과 자립으로 나아가기
① 부모라는 감옥, 그리고 사춘기라는 지진
책의 전반부는 '누구 엄마'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지워져 간 개인의 삶과, 아이의 성장에 따라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관계의 균열을 정직하게 응시한다. 내 온 세상과 바꾼 심장 같았던 아이가 자라 사춘기라는 거대한 벽으로 마주 설 때, 부모는 깊은 상실감과 마주한다. 저자는 자신이 아이의 꿈에 은연중 욕심을 투영했던 순간, 참아온 사랑이 오히려 가시가 되어 서로를 찔렀던 아픈 기억들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는다.
이때 저자를 구원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냉철한 문장들이었다. 삶의 고통을 본질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주체성을 찾으라 했던 철학자들의 조언처럼, 저자는 아이를 향한 맹목적인 통제와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아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는 여백을 선물한다. 부모의 역할이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집을 묵묵히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어야 함을 깨닫는 과정은 깊은 울림을 준다.
[말을 건네는 생각]"사랑은 소유하려는 의지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니체)"사랑은 소유가 아니라,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사랑이란 손을 꽉 쥐는 일이 아니라, 손을 놓아주는 용기 속에서 더 깊어진다. 멀어질수록 보이지 않던 마음의 결이 드러나고, 떨어질수록 서로의 존재가 더 또렷해진다.
② 성인이 된 자녀, 여전히 무거운 부모의 왕관
품 안의 자식이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에게 남겨진 무게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3장에서는 어른의 옷을 입었지만 여전히 서툰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복잡한 내면을 포착한다. 말 한마디에 차갑게 식어버리는 저녁상, 숨 쉴 틈 없이 다그치는 현실적인 지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자리에서 느끼는 한숨 등은 현대 한국 사회의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격하게 공감할 만한 날것의 일상이다.
저자는 싸우지 않았음에도 자녀의 무심한 태도에 가장 깊은 내상을 입는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면서도, 이를 원망으로 치환하지 않는다. 자녀의 독립을 인정하는 과정 역시 부모가 치러내야 할 또 하나의 성숙 과정임을 담담히 인정한다.
③ 함께 걷되 나를 잃지 않는 건강한 공존
이 책의 핵심적인 솔루션은 4장인 '함께 걷되, 나를 잃지 않는 길'과 부록 〈함께 살아가는 연습〉에 집약되어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차갑고 이성적인 단절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고 기댈 수 있는 건강한 거리 두기'다. 대화의 온도를 낮추는 연습, 돈이 섞일 때 명확하게 선을 긋는 용기, 세대 차이를 분노가 아닌 하나의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바라보는 혜안 등은 매우 실천적이고 구체적이다.
특히 4장의 내용을 한눈에 정리하여 독자가 직접 적어볼 수 있도록 마련된 '공존을 위한 실천 노트' 부록은, 이 책이 단순한 감상용 에세이를 넘어 독자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훌륭한 워크북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함께 살아가는 연습1. 자녀의 인생에서 완전히 물러나기보다. 조용히 응원하는 조력자로 남는다.2. 아이의 행복이 아닌, 나의 평온이 중심이 되는 하루를 산다.3. 부모 역할을 내려놓는 대신,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남을 연습한다.
"비로소, 나의 이름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만큼 했으면 괜찮은 부모 아닙니까』는 부모라는 길 위에서 잠시 길을 잃고 멈춰 서 있는 이들을 위한 쉼표 같은 책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가정도 없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불안해하고 흔들리며, 때로는 후회와 고통 가운데에서 아주 조금씩 성장해 나갈 뿐이다.
저자가 책의 마지막 장을 닫으며 던지는 "이제, 나를 위한 삶"이라는 선언은 이기적인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부모가 먼저 한 인간으로서 단단하게 존재할 때, 비로소 자녀 역시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존중할 수 있다는 깊은 역설의 진리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결국 나 자신을 키우고 치유하는 여정이었음을 고백하는 이 책은, 자녀의 사춘기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부모들, 성인이 된 자녀와의 관계 설정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나 '아빠'라는 무게에 눌려 정작 '나'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지친 마음을 조용히 안아주는 가장 다정하고 단단한 정서적 방파제가 되어줄 것이다. 좋은 글귀로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