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마주한 가장 인간적인 질문: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한 오랜 질문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건강한 지금은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의연하게 말하지만, 막상 불치의 질병이 느리든 순간적이든 찾아오고 병세가 악화되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사람이 떠올랐다. 아내의 고등학교 때 친구의 남편 이야기다. 과거 배드민턴 선수이자 감독으로 활약하며 누구보다 건강과 체력에 자신 있어 했던 그였지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수년이 넘는 세월 동안 코마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다.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누운 채 생존해 있는 그의 삶과 연명치료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계속 되뇌이게 된다.
의료 제도의 그늘과 스스로 결정하는 마지막 권리
20년 가까이 수많은 환자를 진찰해 온 가정의학과 전문의 양성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의학이 가져온 삶의 연장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는다. 의학의 발달로 심장이 멈춰도 다시 뛰게 하고 기계로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연명 사회’가 되었지만, 정작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길어지고 고통스러워졌다. 1990년에는 한국인의 76.6%가 집에서 임종을 맞이했지만, 2022년에는 74.8%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통계는 죽음이 삶의 자연스러운 마무리가 아닌 의료 제도로 관리되는 영역으로 변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책은 보라매병원 사건과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등 법정에 선 죽음의 역사부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호스피스, 간병 살인, 해외의 의료조력사망 논쟁까지 생의 마지막을 둘러싼 복잡한 현실을 차분하게 전달한다. 저자는 무조건적인 생명 연장이 생명 존중과 동의어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의료진의 법적 책임이나 가족의 죄책감에 떠밀려 정작 환자 당사자의 뜻이 소외되는 의료 현장의 비극을 서술한다. "의료가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치료를 오래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덜고 남은 시간을 환자의 삶으로 지켜주는 데 있다."는 저자의 고백은 지금도 식물 상태로 누워있는 지인의 삶과 오버랩되며 연명의료의 참된 가치와 한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나다운 마무리를 위해 지금 나눠야 할 대화
"좋은 죽음이란 따로 없으며, 단지 ‘나쁜 죽음’과 ‘덜 나쁜 죽음’만 있을 뿐"이라는 책의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은 단순한 서류 제출이나 치료 포기가 아니다. 내가 어떤 상태까지 살아있기를 원하는지, 무엇을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가족들과 미리 이야기하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죽음은 한 번 오지만 그에 이르는 결정은 수없이 많다. 의식이 사라진 뒤 남겨진 이들의 죄책감과 선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내가 바라는 삶의 마무리에 대해 이야기할 용기가 필요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답게’ 살다가 평안히 떠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삶의 거울을 비춰주는 따뜻하고도 명확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