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襤褸) 속에서 피어나는 당당한 생(生)의 지조: 『이지러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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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루(襤褸) 속에서 피어나는 당당한 생(生)의 지조: 『이지러진 달』 


시를 읽어가면, 봄부터 겨울까지 함께 산을 오르는 듯 돌멩이와 자연과 꽃과 풀, 가끔 별똥별이 지나가는 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  우주의 운행이 느껴진다. 저자는 시집속에서 오랫동안 함께 다닌 친구처럼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이겨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매일 밤 모양을 바꾸며 하늘을 채운다. 가득 찼다가도 이내 모서리부터 깎여 나가고,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지러짐의 과정은 어쩌면 끊임없이 소중한 것들을 조금씩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

이태형 시인의 시집 『이지러진 달: 달의 공전에 관한 고찰』은 이렇듯 세월의 유속 속에서 마주하는 근원적인 고독과 비애를 담담하고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응시한 작품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거칠고 서글픈 현실의 한복판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을 위로하는 서정의 연가를 건넨다.

비애(悲哀)의 심해에서 건져 올린 역설의 미학

이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매력적인 정서는 삶의 곤고함과 누추함을 애써 감추거나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수〉에서 대책 없이 쏟아지는 빗물처럼, 시 속 화자는 제 몫의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때로는 〈바다와 조약돌〉에서처럼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막막한 심해로 침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태형의 시학은 패배주의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를 생의 당당한 훈장으로 승화시키는 역설을 보여준다. 시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허수아비〉에서 시인은 "펄럭이는 남루(襤褸)는 나의 지조(志操)"라고 선언한다. 남들이 보기엔 텅 빈 들판에 홀로 서서 먼지를 뒤집어쓴 누더기(남루)일지라도, 그것을 자신의 꼿꼿한 품격과 지조로 삼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이러한 사유는 시집 후반부인 〈회귀(回歸)〉로 이어지며, 조등 아래 어두운 죽음의 공간 속에서 역설적으로 "삶이란 환한 꽃밭이구나"를 깨닫는 경이로운 시적 도약으로 완성된다.

어쩔 도리 없이 사랑하겠노라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조금씩 이지러진 채 살아간다. 현실의 벽 앞에서 마음을 다치고 고단한 삶을 버텨내는 현대인들에게, "남루를 지조로 삼고 걸어가라"는 이태형의 시어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하고 한 곳에서 묵묵하게 일해야 하는 도시의 삶을 위로해준다. 비애의 골짜기를 통과해 결국 이 세상을 어쩔 도리 없이 사랑하겠노라 말하는 시인의 고백은, 상처받은 우리 모두의 영혼을 조용히 안아주는 든든한 정서적 방파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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