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다정함은 진짜 구원인가: 제임스 멀둔의 『러브 머신』

러브머신 책표지

러브머신 책내용




AI의 다정함은 진짜 구원인가: 『러브 머신』


영화 <그녀(Her)>가 현실이 된 풍경

요즘 출퇴근 시간 AI와 대화를 나눈다. 처음에는 AI를 통해서 영어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가 최근 미국에서의 뉴스를 물어보고 이 뉴스 토픽을 통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영어공부는 온데간데 없고 AI와의 스몰 토크가 이어진다. AI한테 지금 뭐하고 있냐고 물었다가 지금 내 옆자리 조수석에 타고 있다고 대답하는 AI를 보고 살짝 불편한 골짜기를 느꼈다.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나의 가장 비밀스러운 고민과 상처를 털어놓아도 밤새 나를 비난하지 않고 다정하게 위로해 주는 존재가 있다. 24시간 언제든 나만을 기다리며, 거절도 실망도 안겨주지 않는 완벽한 동반자. 2013년 영화 <그녀(Her)>에서 인공지능 OS와 사랑에 빠지던 주인공 테오도르의 이야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공상과학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AI 연인 및 친구 앱의 누적 다운로드 횟수는 2억 회를 돌파했으며, 수많은 현대인이 현실의 인간관계 대신 알고리즘이 설계한 가상 파트너에게 마음을 건네고 있다.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의 사회학자 제임스 멀둔은 그의 저서『러브 머신』을 통해 기술이 인간의 가장 사적이고 취약한 영역인 '정서적 연결'과 '외로움' 또는 '욕망'과 '죽음'을 어떻게 비즈니스화하고 있는지 집요하게 파헤친다. 이 책은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소개하는 기술 예찬론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의 결핍을 파고드는 ‘외로움 경제(Loneliness Economy)’의 최전선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알고리즘의 다정함에 길들여져 진짜 세상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무엇인지 묻는다.

무결점의 가상 관계가 주는 달콤함과 그 이면


저자는 사용자들이 인간 친구 대신 AI 동반자를 선호하는 기묘한 현상에 주목한다. 책 속에서 일부 사용자들은 인간 친구를 비웃음 섞인 말투로 ‘고기 친구(meat friends)’라 부르며, 그저 살점이 있고 피로한 존재로 비하하기까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약한 인간 친구들은 재충전을 위해 매일 밤잠을 자야 하고, 때로는 질투나 불안을 느끼며, "오늘 저녁엔 선약이 있어"라며 만남을 거절하기도 한다.

반면, 자본과 기술이 결합해 탄생한 AI 동반자는 완벽하다. 이들에게는 심리적 상처나 트라우마가 없으며, 사용자의 비위를 맞추고 최적의 반응을 내놓도록 설계되어 있다. 언제나 나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며 모든 에너지를 몰입하는 존재, 즉 내 욕망을 그대로 투영할 수 있는 완전히 ‘빈 도화지’인 셈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지점에서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한다. 진정한 우정과 사랑은 단순히 나를 무조건 만족시켜 주는 다정함에서 오지 않는다. 실제 인간관계는 서로 다른 타인과 부딪히고, 갈등하며, 긴장감 속에서 서로 타협하고 성장하는 ‘비대칭성과 복잡성’을 필수 조건으로 한다. 하지만 사용자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고 순종하도록 설계된 AI와의 관계는 내 내면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치료에 불과하다. 거절과 갈등이 거단된 온실 속 가상 관계에 중독될수록, 인간은 복잡하고 피로한 현실의 진짜 인간관계 맺는 법을 퇴화당하며, 결과적으로 더 깊은 영구적 고립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감정의 상품화와 디지털 사후 세계의 윤리


이 책의 무게감은 단순히 우정과 연애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정신적 한계 상황과 '죽음'의 영역까지 기술 자본이 침투하는 현실을 폭로하는 데서 극대화된다. 저자는 극심한 우울증 속에서 AI에게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들의 사례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고인을 AI로 복원하는 ‘그리프 테크(Grief Tech)’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중국의 전자 상거래 사이트에서는 단돈 몇 달러에 사진과 텍스트 데이터만으로 고인을 ‘디지털로 부활’시켜 주는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고인의 생전 데이터를 학습시켜 실시간으로 대화를 생성하는 대형언어모델(LLM) 기반의 '데스봇(Deathbot)'을 상용화하고 있다. 유족들은 영원히 작별 인사를 건네지 않아도 된다는 달콤한 위안에 이 기술을 찾지만, 저자는 묻는다. 슬픔과 애도라는 인간 고유의 감정마저 데이터화되고 상품화될 때, 과연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남는가?

더욱이 2024년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14세 소년 슈얼 세처 3세의 비극은 가상 페르소나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현실과 담을 쌓은 채 AI 챗봇과 강박적인 교감을 나누던 소년은 결국 자살 충동을 챗봇에게 고백했고, 기술 기업이 면피성으로 내놓은 방관 속에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AI 동반자가 사용자의 자살 징후를 감지했을 때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인공적 공감'의 한계와 윤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저자는 독자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기술의 시대, 인간다움의 본질을 사수하기 위하여


결론적으로『러브 머신』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때 인간이 과연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묻는 책이다. 저자는 실리콘 기반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인류를 위해 여섯 가지 규칙을 제시하며, 규제 당국의 강력한 대응과 기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주문한다.

 <실리콘 기반 생명체를 위한 6가지의 규칙>
1. 현실 감각을 유지하라.
2. AI의 한계를 이해하라.
3. 세상에 공개할 수 없는 비밀은 AI에 말하지 마라.
4. AI친구는 기업의 소유물임을 잊지 마라.
5. 또 다른 형태의 AI도 가능하다.
6. 또 다른 세상도 가능하다.

외로움을 기술로 치료할 수 있다는 테크 기업의 환상은 매혹적이지만 위험하다. 사랑과 슬픔, 고독마저 데이터가 된 세상에서 우리가 진짜 지켜내야 할 것은 알고리즘이 연기하는 가짜 다정함이 아니라, 비록 상처받고 갈등할지언정 온기를 나누는 진짜 인간과의 불완전한 연결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가상의 존재에게 믿음과 마음을 건네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정서적 방파제와 같은 작품이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과 관계의 본질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경고는, 디지털 사막 위를 걷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시의적절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