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없는 마음의 수술대 위에서 인간을 마주하다: 김수룡의 『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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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 없는 마음의 수술대 위에서 인간을 마주하다: 『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가벼운 위로의 시대, 진짜 '마음의 수술'을 말하다

오늘날 서점가의 심리 분야 베스트셀러 매대는 대개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다", "그냥 흘려보내라"와 같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로의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상처받은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다정함은 일시적인 진통제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마음 깊숙이 박힌 고통의 종양을 근본적으로 도려내지 않는 한, 통증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30여 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치열한 임상 현장을 지켜온 김수룡 작가는 그의 저서 『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를 통해 보다 정직하고도 묵직한 선언을 던진다. 메스도, 수술대도, 붉은 피도 보이지 않는 정신과 진료실이지만, 그 안에서는 매일 가장 날카롭고 치열한 ‘마음의 수술’이 집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취 없이 날것의 상처를 헤집고 직면해야 하는 정신과 치료의 본질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독자들을 차가우면서도 가장 뜨거운 인간 치유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정신과 의사라는 '마지막 수비수'의 고투와 성찰

① 첫 환자의 상실, 그리고 평생의 유령이 된 트라우마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정신과 의사라는 권위 어린 가면을 과감히 벗어던진 저자의 극단적인 진솔함에 있다. 전공의 1년 차 시절, 자신의 첫 환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료실 책상 밑에 들어가 아이처럼 목놓아 울던 저자의 고백은 독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환자의 자살은 의사로서 지닐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절망이자, 평생을 따라다니며 “나는 무능한 의사인가”를 되묻게 만드는 유령이 되었다. 저자는 매일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과 마주하며 환자의 고통에 전염되고, 구하려다 함께 익사할 것 같은 무력감에 시달렸던 날들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다른 이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외과로 도망칠 생각까지 했다는 대목은, 사람의 정신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하는 업(業)인지를 절감하게 한다.


② '마음의 수술'과 고통을 통과하는 용기

저자가 정의하는 상담과 치료는 단순히 환자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하는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평생 쌓아온 상처의 기억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곪아 터진 부위를 도려내고 봉합하는 고통스러운 '수술'의 과정이다.


환자가 오랜 시간 외면해 왔던 과거의 비극이나 왜곡된 자아와 직면하게 만드는 일은, 마취제 없이 생살을 찢는 것과 같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저자는 "내 진료실에서는 가끔 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라고 고백한다. 치료란 고통을 우회하거나 피하게 돕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직면하고 그 고통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통과해 내는 일이라는 통찰은 가벼운 힐링 신드롬에 젖어 있던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③ 관계 속의 붕괴, 그리고 관계를 통한 재건

조현병이나 알코올 중독 등 중증 정신 질환자들을 주로 치료해 온 저자는 경험이 쌓일수록 완벽한 치료법이나 명확한 진단명에 의존하는 태도를 경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는 약물의 효과만을 보고 달려들었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약물이 가진 미묘한 부작용과 환자 개개인의 삶의 맥락이 눈에 들어와 오히려 처방하기가 두려워진다는 고백은 깊은 성찰의 결과물이다.


인간은 단순히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나 질병만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그가 맺고 있는 '관계'이며, 역설적으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 또한 '관계'와 '치료 공동체' 속에 있다. 입원비가 없어 치료를 포기하려는 자살 위험 환자에게 "돈은 내가 낼 테니 입원하자"라며 손을 내밀었던 저자의 결단이나, 찐 옥수수 세 개와 같은 환자들의 서툴지만 진심 어린 선물들 속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의 본질을 확인하게 된다.


상처와 좌절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헌사

결론적으로 『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는 한 정신과 의사의 단순한 임상 기록을 넘어, 좌절과 상처투성이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 투쟁기에 가깝다. 완치라는 허울 좋은 결과 대신 매일 실패하고 좌절하면서도 다시 진료실 문을 열고 환자의 손을 잡는 저자의 모습은, 삶이란 끝내 정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며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여정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타인의 아픔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본 이들, 마음의 깊은 흉터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그리고 진정한 공감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한 서늘함과 뜨거운 위로를 동시에 선사한다. 가짜 다정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상처를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마주할 용기를 주는 이 책은, 독자들의 마음속 해묵은 응어리를 정교하게 도려내는 훌륭한 '정서적 수술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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