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없는 마음의 수술대 위에서 인간을 마주하다: 『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위로의 시대, 진짜 '마음의 수술'을 말하다
'요즘은 정신과도 수술로 치료를 하는구나'나는 처음에 진짜 수술을 하는 줄 알았다.
책을 읽으면서 정신과가 정말 힘든 병동이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실체적인 마음의 병에 근원에 다가가는 치료를 하기 위해서 오히려 마음의 병에 감염이 될 수도 있는 매우 어렵고 위험한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절벽에서 손가락 하나라도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틈을 찾아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환자의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치료인 것을 알게 되었다. 도리어, '차라리 수술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정신과 의사는 대화로 상담하면서 치료하는 다른 의사보다는 편한 직업으로 생각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술대에서 집도하는 의사를 많이 보여 주어서 그런지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의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정신과 의사는 대화로 상담하면서 치료하는 다른 의사보다는 편한 직업으로 생각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술대에서 집도하는 의사를 많이 보여 주어서 그런지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의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구나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간절하면 열리는 문이 있다. 간절해야만 열리는 문이 있다. 간절함은 배신하지 않았다.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약물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로는 과학적 근거보다 치료자의 간절함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암벽 등반가는 손가락 하나라도 들어갈 틈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높은 바위를 오르지 않는가.
30여 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치열한 임상 현장을 지켜온 김수룡 선생님은 『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를 통해 보다 정직하고도 묵직한 선언을 던진다. 메스도, 수술대도, 붉은 피도 보이지 않는 정신과 진료실이지만, 그 안에서는 매일 가장 날카롭고 치열한 ‘마음의 수술’이 집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취 없이 날것의 상처를 헤집고 직면해야 하는 정신과 치료의 본질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독자들을 차가우면서도 가장 뜨거운 인간 치유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정신과 의사라는 '마지막 수비수'의 고투와 성찰
① 첫 환자의 상실, 그리고 평생의 유령이 된 트라우마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정신과 의사라는 권위를 과감히 벗어던진 저자의 진솔함에 있다. 전공의 1년 차 시절, 자신의 첫 환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진료실 책상 밑에 들어가 아이처럼 목놓아 울던 저자의 고백은 나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나도 따라 눈물이 났다.
세상은 나의 생각처럼 완전하거나 이상적이지 않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우침이 위로로 느껴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전공의 시절 내 환자의 자살로 만들어진 가슴 깊이 묻어 둔 우울증 같은 상처가 나도 모르게 그 한마디 말에 봇물처럼 다시 올라왔다.
환자의 자살은 의사로서 지닐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절망이자, 평생을 따라다니며 “나는 무능한 의사인가”를 되묻게 만드는 유령이 되었다. 저자는 매일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과 마주하며 환자의 고통에 전염되고, 구하려다 함께 익사할 것 같은 무력감에 시달렸던 날들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다른 이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외과로 도망칠 생각까지 했다는 대목은, 사람의 정신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하는 업(業)인지를 절감하게 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환자들을 마주한 작가에게 나를 대입해 보고 있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작가의 글을 따라서 몇 번을 울컥했는지 모른다.
예상했던 공포나 절망 대신, 깊은 안정감과 수용이 찾아 온다고 한다. 이는 받아들이는 순간에는 아무런 심적 고통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저항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받아들이는 순간 고통이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받아들임의 힘이다.
죽음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삶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과 같다.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그 이후로 나의 삶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삶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커피 한 잔의 향기, 바람의 촉감, 사람들의 웃음소리. 이 모든 것들이 이전보다 훨씬 생생하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② '마음의 수술'과 고통을 통과하는 용기
저자가 정의하는 상담과 치료는 단순히 환자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평생 쌓아온 상처의 기억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 곪아 터진 부위를 도려내고 봉합하는 고통스러운 '수술'의 과정이다.환자가 오랜 시간 외면해 왔던 과거의 비극이나 왜곡된 자아와 직면하게 만드는 일은, 마취제 없이 생살을 찢는 것과 같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저자는 "내 진료실에서는 가끔 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라고 고백한다. 치료란 고통을 우회하거나 피하게 돕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직면하고 그 고통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통과해 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③ 관계 속의 붕괴, 그리고 관계를 통한 재건
조현병이나 알코올 중독 등 중증 정신 질환자들을 주로 치료해 온 저자는 경험이 쌓일수록 완벽한 치료법이나 명확한 진단명에 의존하는 태도를 경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는 약물의 효과만을 보고 달려들었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약물이 가진 미묘한 부작용과 환자 개개인의 삶의 맥락이 눈에 들어와 오히려 처방하기가 두려워진다는 고백은 깊은 성찰의 결과물이다.인간은 단순히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나 질병만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그가 맺고 있는 '관계'이며, 역설적으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 또한 '관계'와 '치료 공동체' 속에 있다.
환자의 정서 상태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치료의 출발점이다. (...)회진은 병동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가정에서, 회사에서, 관계 속에서 서로의 상태를 '회진'하고 있다. 정서적 공감 없이 기능만 회복시키려는 시도는 치료도, 관계도 발전이 없다.
치료의 시작은 언제나 같다. 먼저 이해하고 함께하는 것.
상처와 좌절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헌사
결론적으로 『나는 수술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는 한 정신과 의사의 단순한 임상 기록을 넘어, 좌절과 상처투성이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투쟁기에 가깝다. 매일 실패하고 좌절하면서도 다시 진료실 문을 열고 환자의 손을 잡는 저자의 모습은, 삶이란 끝내 정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며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여정임을 보여준다.멀리서 부터 체온으로 감싸 안고 온 찐 옥수수를 환자로부터 선물로 받았을 때 느꼈던 절절한 마음, 그 속에서 환자와 의사를 떠나서, 우리 서로를 지탱하는 휴머니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타인의 아픔 앞에서 무력감을 느껴본 이들, 마음의 깊은 흉터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그리고 진정한 공감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한 서늘함과 뜨거운 위로를 동시에 선사한다. 가짜 다정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상처를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마주할 용기를 주는 이 책은, 독자들의 마음속 해묵은 응어리를 정교하게 도려내는 훌륭한 '정서적 수술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